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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rch Heart] 영화 '영주', 결말이 아름다운 용서란 이름의 변주곡
[Search Heart] 영화 '영주', 결말이 아름다운 용서란 이름의 변주곡
  • 변종석 기자
  • 승인 2018.11.0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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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을 바라보는 영리한 시선
아이러니 속 현실을 통해 묘한 울림을 주는 작품

[뉴스포인트 = 변종석 기자] 원수를 사랑하는 상황은 상당히 흥미롭다.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싶은 열망에 빠졌다가 도리어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은 작품을 통해 보여지곤 한다.

자신이 암살하려던 친일파 이선생을 유혹하여 암살하려던 왕자즈가 도리어 이선생에게 사랑을 느끼던 이안 감독의 <색, 계>나 상황이 있을 것이고, 표현하는 바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폴 버호벤 감독의 <블랙 북>은 나치 장교 문츠에게 접근해 고급 정보를 빼돌리다 문츠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끼는 레이첼이 이중스파이로 몰리며 핍박 받는 모습 등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마누엘 푸익의 소설이자 동명의 영화로 헥토르 바벤코가 감독한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조금 다르다. 원수는 아니지만 몰리나가 정치범인 가석방을 조건으로 발렌틴의 배후를 캐지만 몰리나는 발렌틴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발렌틴 역시 몰리나를 받아들인다. 이성애자로써 동성애자인 몰리나를 혐오했지만,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춰서 조절할 수 있는, 그런 편리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치 않았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크게 바꾸어버리는, 어찌보면 두렵기까지 한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앞서 풀어놓은 영화들과 많은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 원인은 차성독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영주>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좋아져버린 소녀의 이야기. 이러한 내용들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영화 '영주' 공식 포스터

영화 <영주>의 주인공인 영주(김향기)는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그리고 근근이 살아가던 남매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동생 영인(탕준상)이 강도짓을 해서 소년원에 들어갈 위기에 처한 것.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합의금 300만원이 필요했지만, 영주는 그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이리저리 돈을 마련해보려 했지만, 19살의 어린 영주에게 300만원이라는 돈은 너무 큰돈이었다.

영주는 절망감을 느끼며 자신들의 삶을 망쳐놓고 얼마나 잘 살고 있나 보자는 심정으로, 부모님 사고의 원인이 된 상문(유재명)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얼떨결에 영주는 상문의 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영주는 몸이 아파 보이는 상문과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향숙(김호정)에게 몸 둘 바를 모르고 일을 한다. 하지만 아직 돈이 필요했기에 밤늦게 가게를 털기로 한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상문이 가게로 들어온다. 상문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쓰러지자 영주는 도망치고 만다. 하지만 영주의 신고로 상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향숙은 영주에게 어떤 용도인지 묻지도 않고 돈을 빌려준다. 영주는 그들에게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영주에게 있어 상문은 악이었다. 부모를 죽게 만들고 동생과 자신의 삶마저 힘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알아 버렸다.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으며, 그들을 증오하기에는 너무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성문을 이해하고 말았다. 미워해야할 대상에게 마음을 열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들에게 묘한 울림을 선사한다. 영주를 비롯한 관객들은 이해해버린 것이다.

영화 '영주' 공식 이미지
영화 '영주' 공식 이미지

암살 대상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치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고 알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용서해버린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온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의 피해자인 이신애는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을 애써 용서하려고 했다. 이것은 지극히 자신을 위해 남을 용서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영주는 가해자였던 상문이 고통받고 있었으며, 그들도 결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을 이해해버린 것이다.

극의 마지막에 영주는 결국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만다. 자신이 영주를 절망에 빠트린 가해자라는 사실에 향숙은 괴로워한다.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앞으로 영주의 얼굴을 어떻게 보냐며 한탄한다. 향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들의 업보로 고통 받는 영주를 보듬어야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는 향숙에게 너무나 큰 죄책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뒤바껴버린 것이다. 결국 영주는 그들 부부에게서 도망치고 만다.

영화 '영주' 공식 이미지
영화 '영주' 공식 이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영주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고모네가 영주 남매를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는지 모르며, 엇나간 동생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도 자세히 모른다. 단지 그것을 보고 느끼는 영주의 감정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쓸데없이 복잡한 감정선이나 복선이 난무하고, 끝내 그것들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끝나버리는 영화들을 종종 본다. 그런 영화를 접할 때는 느끼는 짜증을 <영주>에서는 느끼지 못했다. 화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보듯이 우리는 날것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19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영주의 이야기는 언뜻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긴 시퀀스로 표현된 영주의 감정 표현을 주목하며 천천히 책을 읽듯이 풀어간다면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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