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5 10:00 (토)
[Search Heart] 영화 ‘도어락’, 외면의 두려움
[Search Heart] 영화 ‘도어락’, 외면의 두려움
  • 변종석 기자
  • 승인 2018.12.02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낯선 사람의 침입 흔적

[뉴스포인트 = 변종석 기자] 예로부터 자물쇠의 역할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외부의 침입에서 방어하기 위함이다. 열쇠를 가진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사적인 공간에 침입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갇혀있는 자신의 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선 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문이 아무나 드나들 수 없도록 자물쇠를 걸고 그것을 해제할 열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것이 현대에 이르러 편리화된 것이 도어락이다. 지문을 인식하거나 음성, 홍채를 비롯한 숙자 비밀 번호 등으로 지켜지고 있다. 정말 그 뿐이다. 금고가 아닌 이상 사방이 완벽하게 막혀 있는 거주 공간은 없다. 자물쇠가 걸려있는 문이 아니라도 다른 식으로도 침입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자물쇠건 도어락이건 어찌됐든 해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럼 도대체 영화의 제목이 <도어락>인 것일까?

영화 ‘도어락’ 공식 이미지
영화 ‘도어락’ 공식 이미지

이권 감독의 영화 <도어락>은 열려있는 도어락, 낯선 사람의 침입 흔적, 혼자 사는 경민(공효진)의 원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되는 공포를 그린 스릴러이다. 아무런 잠금장치도 되지 못하는 도어락과 피해자를 믿지 못하는 경찰, 무엇하나 경민의 편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개인주의로 심화되어가는 현대 사회를 꼬집는다. 이권 감독은 유독 우리나라에만 도어락이 많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 <도어락>이라는 제목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심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늦은 밤, 뒤에서 걸어오는 낯선 이의 발걸음 소리에 놀라며, 자신을 따라 엘리베이터의 남자를 경계한다. 우리는 그들을 모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경민은 엘리베이터에 탔음에도 층수를 누르지 않는 남자를 경계한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남자가 내리고 자신의 집 앞에서 문을 열기 시작한다. 경민은 자신의 층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러한 무관심은 결국 옆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죽어도 알지 못하며,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화 ‘도어락’ 공식 이미지
영화 ‘도어락’ 공식 이미지

아이를 키우는 데는 적어도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에 이르러 마을의 규모는 커지며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마을이 감당했어야할 역할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 그것은 가족을 제외한 타인, 심지어 옆 집의 사람도 믿을 수 없기에 벌어지는 것이다. 비단 홀로 살아가는 여자가 변태 같은 남자의 타겟이 됨으로써 소외되는 상황만이 가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권 감독의 <도어락>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의 타겟이 되어 고통 받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불쾌감을 조성하기 위해 단순히 자극을 위해서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거나, 범인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극의 허점도 아니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가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현실적인 공포를 우리에게 선보이는, 개인주의적 사회의 허점을 찌르는 영화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