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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균' 원작자 소재원 작가, "기록이 기억되면 기적이 생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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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원 작가

 

[뉴스포인트 김소민 기자] “기록은 기억이 되어 기적을 만든다.”

구성원의 기억이 사회 전반에 기적을 불러온다고 믿는 작가는 약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기록한다. 독자는 기록을 읽어 기억을 되짚고 사회적 대책을 촉구한다. 약자의 외침은 모두의 바람이 되고 뜻이 모여 역사가 바뀐다. 진정한 정의 사회 구현을 실천하는 선순환이다.

소재원 작가는 기록의 힘과 기억의 파급력을 신념으로 여기는 약자의 대변인이다. 영화 ‘비스티보이즈’의 원작 소설 <나는 텐프로였다>로 데뷔한 소 작가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 영화 ‘터널’의 원작 소설 <터널-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 아동 성폭력 생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원’의 원작 소설 <소원-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다수 출판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소원>은 출판 당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는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로 이어져 ‘글이 가진 힘’과 선한 영향력을 알렸다.

최근 소 작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폭로한 원작 소설 <균>을 영화화하면서 다시 한번 기적을 꿈꾼다. 뉴스포인트가 소재원 작가를 만나 내년 개봉을 앞둔 영화 ‘균’과 작가의 근황을 들어봤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룬 영화 <균> 소개를 부탁하자 소 작가는 “가습기살균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중 가장 큰 고의적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참사를 기록하려는 선한 마음과 양심이 모여 만든 영화가 바로 ‘균’입니다. 이는 피해자분들의 소중한 마음이 함께한 뜻깊은 영화기도 합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소 작가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알리는 티셔츠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사건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가장 바라는 게 뭘까요? 바로 우리 기억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지워지는 일입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저는 우리가 기억할 때 기적이 이뤄진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티셔츠 제작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후원을 받는다면 혹여나 저의 의도가 변질되거나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모두 자비로 직접 제작해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캠페인 규모는 딱히 정해둔 게 없습니다. 그저 신청하시는 분들은 모두 전해드리려 합니다. 100명이든 100만명이든 대출이라도 받아서 반드시 제작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고 덧붙였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참사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때,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 우리가 기억하고 바꿨더라면 기업은 가습기살균제를 팔지 못했을 겁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잊히면 이번엔 우리 자식들과 아이들이 더 큰 참사로 희생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우리가 기억하고 반드시 그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결국 어른들의 의무라는 겁니다. 전 그 의무를 열심히 행동할 뿐입니다”고 답했다.

이번 작품 외에도 소 작가는 주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소재를 정하는 기준을 묻자 그는 그저 주변을 둘러볼 뿐이라고 했다.

소 작가는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소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제 주변은 모두가 약자들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약자가 저와 손을 잡고 동행하고 있습니다. 전 우리의 이야기를 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재를 찾으러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제 생활의 한 부분, 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인생 한 페이지를 기록할 뿐이죠”라고 말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묻자 애착이 없는 작품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그 날>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소록도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던 한센병에 걸린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제 작품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편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이어 “앞서 언급한 <균>은 피해자들과 가장 많은 호흡하면서 집필한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고요. <소원>도 그렇지요. 그리고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이별이 떠났다>와 <터널>도 애착이 가네요. 이야기하다 보니 애착이 없는 작품이 없는데요(웃음)”라고 부연했다.

집필 장소와 집중력이 흐려질 때 극복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최근 사무공간 겸 집필실을 따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 집필실을 마련하는 이유는 업무공간으로써의 활용성도 중요하지만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죠.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을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더욱 집필실을 따로 마련해야 할 것 같아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어 “글이 안 써지는 경우는 허다하죠. 가끔이 아닌 일상이 글과의 싸움이고 늘 전 패배해요. 그런데 방법이 없어요. 그냥 전 써요. 잘 써지든 안 써지든 그냥 써요. 그게 바로 제가 극복하는 비결 중 하나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즐겨읽는 작품이나 존경하는 작가를 묻자 그는 “전 제 작품을 주로 읽어요. 제가 정말 독서를 좋아하는데 저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독서를 멀리하게 만들어 버렸죠. 그래서 제 작품을 매일매일 읽으며 부족한 부분들을 자가진단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게 됐어요. 아마 제가 작가가 되고 가장 불행한 점을 뽑으라면 바로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겼다는 거예요. 독서로 인한 사색은 제게 유일한 취미였으니까요. 하루 두 시간씩 매일 하던 독서를 포기하니 허전해서 10년 동안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독서만큼의 만족감은 아닌 듯 해요.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에요. 제 주위의 우리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합니다”고 답했다.

 

 

사적인 질의에서도 작가의 품성과 신념이 드러났다. 소 작가는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의 행복이 크다고 했다.

지난 2015년 결혼한 소 작가에 러브스토리에 대해 묻자 “와이프하고는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게 됐어요. 거창한 연애 이야기는 없었답니다. 만남 이후 일주일 만에 혼인신고를 했으니까요. 수년을 만난 연인과도 헤어지는데 어떻게 일주일 만에 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물어오세요. 그런데 아주 간단했습니다. 사랑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주기 위해 난 존재한다고 관점을 바꿨어요. 그리고 ‘이 사람에게 내가 평생을 사랑받을 수 있을까?’가 아닌 ‘이 사람에게 내가 평생을 사랑으로 헌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죠. 결론은 자신 있었어요. 크게 고민하지 않았죠. 사람들은 그래서 잘살고 있나 많이 궁금하실 거예요.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결혼 전 결심을 잊지 않고 사랑을 주는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간다고. “전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닌 사랑을 주는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가요. 받으려 하면 섭섭한 게 많아지거든요. 차라리 주는 게 훨씬 행복하더라고요.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아내와 제가 마실 커피를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토스트를 구워줘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실천하는 행동이에요. 내 하루는 가족들을 위한 시간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요.” 

 

 

“또 아이의 인생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아이에 대한 교육관이나 철학 따위는 없어요. 아이는 아이의 인생이니까요. 제 철학이나 교육관을 주입 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저 전 따라가 주는 거죠. 아이가 쉬고 싶으면 같이 앉아서 쉬면서 그늘이 되어주고 아이가 뛰어가고 싶으면 저도 같이 뛰어가 주죠. 걷고 싶으면 같이 걸어가고 잠시 다른 길로 빠지더라도 다시 손을 잡고 끌고 오기보다 같이 다른 길을 가보며 아이의 모든 걸 존중하고 싶어요.”

소 작가에게 인생 계획이나 목표를 묻자 오히려 질문이 되돌아 왔다. 왜 행복을 포기하고 또 질주해야 하냐는 거다. “전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우리 인생이 계획한 그대로 흘러간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계획할 시간에 실천해요. 그리고 부딪히죠. 목표도 없어요. 충분히 전 만족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목표를 정해야 행복한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이 가장 행복한데 왜 목표를 세워서 행복을 포기하고 또 달려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커요.”

마지막 한마디를 부탁하자 소 작가는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보잘것없는 아이였어요. 겨우내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냄새나는 아이였고 신발이 작아도 살 돈이 없어서 발가락이 휘어버린 아이였어요. 책가방을 멜 수 있는 나이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단 한 번도 임금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아이였고요. 늘 뚜들겨 맞아서 여기저기 꿰맨 흉터가 가득한 아이고 다섯 집이 공동 화장실을 쓰는 집에서 살아야 했던 아이였죠. 그런 아이에게 이렇게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신 은인은 독자분들입니다. 제겐 신앙과 같은 소중한 분들이세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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